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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강공이상급신도비(忠剛公李尙伋神道碑).. 충북유형문화재 제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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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덕명
댓글 0건 조회 5회 작성일 25-04-2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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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강공이상급신도비(忠剛公李尙伋神道碑).. 충북유형문화재 제63호

조선 인조 때의 문신 이상급(1571∼1637)의 묘 입구에 세운 비석.  
 
지정번호 : 충북유형문화재 제63호
지정연도 : 1980년 1월 9일
소장 : 사유
소재지 : 충북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 504
시대 : 조선시대
관리자 : 이종칠

1980년 1월 9일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63호로 지정. 이종칠이 관리.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 504에 있다.
비는 8각의 대석(臺石) 위에 8각기둥형의 비신을 세우고 이수를 얹은 형식이다. 석재는 흰색 대리석이다.

대석에는 8면에 걸쳐 조각을 하였는데, 6면에는 연꽃을, 대칭되는 2면에는 동물상을 조각하였다. 대석의 윗면은 큼직큼직한 연꽃잎 8개를 조각하고 그 위에 비신을 세웠다.
비신과 이수는 하나의 돌로 조성하였다. 비신은 한 면의 너비가 26cm로 8면에 동일한 글자로 장식하였다. 비문은 예서체로 새겼다. 이수는 4각으로 전후면에 각각 두 마리의 용을 사실적으로 조각하여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이상급은 선조 39년(1606) 문과에 급제한 후 정자· 박사 등을 지내고, 형조좌랑 (刑曹佐郎)으로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평안도도사 (平安道都事)를 거쳐 풍기군수를 역임하였다. 그 후 이이첨(李爾瞻)과의 불화로 형 상길(尙吉)과 함께 벼슬을 버리고 충주로 낙향하여 학문연구와 후진들의 교육에 힘썼다.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다시 단천군수(端川郡守)·연안부사(延安府使)를 역임하고, 병조참지(兵曹參知)가 되어 군사와 성곽을 정비하는 등 군비확장에 힘을 기울였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 인조를 호종(扈從)했으며, 강화 후 묘사(廟社)를 모시고 강화도로 간 형을 찾아가던 도중 적병에게 피살되었다. 후에 이조판서로 추증되고 순조 때에 충강공의 시호(諡號)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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